인간의 자유낙하 기록

물리/역학 2018. 5. 2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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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과학을 가르치다가 관련 자료 찾다보니 재미있는 내용이라 소개합니다.

요약하자면 키팅어(1960, 31km) -> 펠릭스 바움가르트너(2012, 39km) -> 엘렌 유스터스(2014, 41km)

엘렌의 경우 캡슐이 아닌 맨몸으로 성층권에 올라가 낙하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참 대단하네요. 

출처 : 한겨레 2012/11/12

1960년 8월 16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계단’이란 명판을 단 곤돌라가 헬륨 기구를 타고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약 1시간 30분 후 그 곤돌라는 대류권을 지나 영하 60도의 공기 한 점 없는 지상 3만 1,300m의 성층권에 다다랐다.

그동안 곤돌라에 타고 있던 조 키팅어 미 공군 대위는 여압복(옷이 밀폐돼 있어 산소와 기압을 내부에서 조절한다) 오른쪽 장갑의 기밀 상태가 좋지 않아 자신의 오른손이 2배로 부풀어 오르는 고통을 겪었지만 꾹 참았다. 곧 벌어질 인류 역사상 최고 높이의 고공 낙하를 위해서였다.

기도를 마친 키팅어 대위는 타고 있던 곤돌라에서 빠져나와 아래의 옅게 층진 지구의 대기권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물체가 하나도 없어 시각적으로 기준을 삼을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자신이 타고 왔던 기구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우주를 향해 달아는 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구가 그 자리에 있었고, 키팅어 대위가 그처럼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속 1,149.5㎞의 속도로 떨어지던 키팅어 대위는 낙하 36초 만에 작은 제동낙하산을 펼쳤다. 기압이 낮은 고도에서 사람의 몸이 나뭇잎처럼 빙글빙글 도는 ‘플랫스핀’ 현상이 발생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4분 뒤에는 고도 5,300m에서 주낙하산을 펼쳐 뉴멕시코의 사막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이로써 그는 유인기구 상승고도 최고 기록과 가장 높은 고도에서의 점프, 최장 시간 자유 낙하, 항공기를 타지 않은 상태에서의 최고 낙하 속도 등의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런데 52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던 조 키팅어의 기록이 2012년 10월 14일 드디어 갱신됐다. 주인공은 바로 오스트리아의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인 펠릭스 바움가르트너. 그는 헬륨 기구를 타고 지상 3만 9,045m 높이까지 올라간 다음 고공 점프해 최고시속 약 1,342㎞의 속도로 자유 낙하하다가 지상 1,500m 상공에서 낙하산을 펼쳐 미국 뉴멕시코주의 사막 지대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소리가 매질을 통과하는 속도인 음속이 시속 약 1,224km이니 그가 기록한 시속 1,342km는 마하 1.24의 속도다. 따라서 그는 맨몸으로 낙하하면서 음속을 돌파한 최초의 기록 보유자가 됐다.

더불어 그는 유인기구 상승 고도 최고기록과 가장 높은 고도에서의 점프 등 모두 3개 부문에서 신기록을 작성했다. 다만 자유 낙하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4분 19초 만에 낙하산을 펼침으로써 조 키팅어가 작성한 세계 최장시간 자유낙하인 4분 36초의 기록을 갱신하지는 못했다.

1969년생인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스카이다이버이자 고층 빌딩에서 낙하산 점프를 하는 유명한 베이스 점퍼다. 그는 2004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량인 프랑스의 밀로 다리(342m)에서 베이스 점프를 했으며, 1999년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구세주 그리스도’상(높이 29m)에서 뛰어내려 세계 최저 고도 베이스 점프 기록도 세운 바 있다.

이처럼 점프의 베테랑인 그도 이번 고공 낙하를 위해 헬리콥터에서의 자유낙하 연습 등을 비롯해 무려 7년여의 세월 동안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지난 52년간 무수한 도전자들이 조 키팅어의 기록 경신에 나섰지만 성공한 이가 아무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그 와중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을 만큼 성층권에서의 스카이다이빙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고공 낙하 성공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첨단 과학기술이었다. 그가 타고 올라간 헬륨 기구는 그 부피가 1960년의 조 키팅어가 타고 갔던 기구의 10배가 넘는 8억 5,095만L였다. 헬륨을 꽉 채울 경우 높이가 55층 빌딩과 맞먹는 180m나 되지만, 0.02mm의 초경량 폴리에틸렌 소재로 제작돼 무게는 1.7톤밖에 되지 않는다.

 그가 입은 특수 우주복인 여압복은 영하 67도에서 영상 38도의 온도를 견딜 수 있음은 물론 초음속 낙하에 필요한 각종 장비들이 부착돼 있었다. 그가 착용한 헬멧 역시 김서림 방지 기능 등 최첨단 기술이 대거 적용돼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밖에 그가 탄 캡슐과 15대의 카메라, 컨테이너 두 대 분량에 이르는 통신장비 등 펠릭스 바움가르트너의 신기록 작성 뒤에는 수많은 기술진의 노력과 최첨단 과학기술이 숨겨져 있다.


조 키팅어나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무엇을 위해 이 같은 첨단기술을 동원해가며 목숨을 건 낙하에 도전한 것일까. 단지 공명심의 발로일까 신기록에 대한 성취욕일까. 아니다. 거기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고속 비행 중인 항공기가 고공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승무원의 안전한 비상탈출 방안을 찾기 위한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조 키팅어가 기록을 세운 당시에는 제트기가 비행고도와 속도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던 때다. 따라서 제트기에서의 탈출 방안이 반드시 필요했다. 또 바움가르트너가 신기록을 작성한 오늘날은 민간 우주비행시대를 맞아 1950년대의 제트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공, 고속 비행하는 우주선에서의 안전한 비상탈출 방안이 시급한 형편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극한에 도전하는 인간의 노력은 오늘날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560149.html#csidxae8b61523931a5babfc0aae216b66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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