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장선생님의 일침(중동고 이명학 교장선생님)

교직관련 2022. 2. 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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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너무 좋아서 옮겨본다.
2월 25일자로 각종 언론에 소개된 중동고 이명학 교장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러분께 한 말씀 올립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대학 입시를 마감하는 요즈음 서울대학을 비롯하여 이른바 명문대 합격자 수를 궁금해하시는 학부모님과 동문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부임 초 입시에 연연하지 않는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올해부터 학교에서 합격자 수를 알려드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러분께서 자꾸 물어오시니 도리없이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본교의 서울대 합격자는 모두 33명(재학생 24명/졸업생 9명)입니다.
참고로 2019년 20명, 2020년 21명, 2021년 20명 이었습니다.
졸업생 9명은 학교에서 직접 자체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서울 대학 공식 발표가 나면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재학생 24명은 자사고로 전환한 이래 가장 많은 수입니다.
연세대(42명)와 고려대(40명)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특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의예과에 재학생이 각 3명씩 총9명이 합격한 것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수년 전 어느 동문이 총동문회 단톡방에 그해 서울대학 합격자 수를 올리면서 "이사장님과 교장 선생님이 애쓰셨다"라고 쓴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글을 보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대학 합격이 이사장, 교장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고3 선생님뿐 아니라 1학년 때부터 열심히 가르쳐 주신 모든 선생님 그리고 노심초사하신 학부모님과 학생들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지요.
이사장과 교장이 학생과 선생님을 닦달한다고 입학 성적이 좋아집니까?
게다가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그런 짓을 해서 되겠습니까?
여기는 사람을 교육시키는 '학교'지 입학 성적으로 먹고사는 '학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언론까지 나서서 서울대학 합격자 수로 학교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은 이런 보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조차 생각하지 않으니 한심한 노릇이지요.
그리고 특히 대다수 학부모님과 동문들은 그래 입학 성적으로 일희일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전교생 중 서울대학 입학생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50%정도의 학생은 이른바 'in Seoul 대학'에 조차 입학을 못 합니다.
10%도 안 되는 학생의 성과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90%학생이 어떤 교육을 받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해 해야 합니다.
근 7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올해 서울대학에 몇 명이나 갔냐?"는 질문이 우리 사회와 학교 교육을 얼마나 피폐하게 했는지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둘 특출한 학생을 빼고 학교 교육만으로 서울대학에 입학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의 열정과 학원에서의 입시 준비가 서울대학 입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학력이 천차만별인 교실에서 수업은 중간 수준 정도에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열반을 나누지 않는 이상 상위권 학생에게 맞는 수업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서울대학 합격생이 많으면 공은 오로지 학교 차지가 되니 계면쩍은 노력이고, 서울대학 합격생이 적으면 학교가 무슨 죄라도 진 것 같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많이 가든 적게 가든 학교에서는 똑같이 가르쳤을 뿐이고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면학 분위기를 조성했을 뿐입니다.
매년 똑같이 했습니다.

이제부터 "서울대학에 몇 명 갔냐?"는 질문은 그만둘 때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잘 받고 성적이 아니라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학교다운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올해는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학생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이 좋습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미래도 밝아지고 학생들도 환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올해는 전년도에 비해 많은 학생이 서울대학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임 후 1년 동안 단 한 번도 고3 담임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선생님께 서울대학의 '서'자도 꺼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몇 명 입학했는지 물은 적도 없습니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학교는 학교다워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울대학 합격생이 많아졌다고 교장이 칭찬받을 일은 결코 아닙니다.
학부모님께서 열성적으로 돌보시고, 선생님께서 자상히 보살피시고, 학생이 밤잠 줄여가며 죽기 살기로 노력한 결과입니다.
칭찬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서울대학에 몇 명 보냈느냐'에 일희일비 마시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우리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학생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2022.2.22.
중동고 교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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